아이들의 정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원마루 )
p14 : 18세기 동유럽에서 일어난 신앙 운동 하시디즘에서 한 말처럼 아이 한 명을 구하는 일이 곧 세상을 구하는 일이다.
p18 : "아이의 천사는 언제나 나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 마태복음 18:10
p33 :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16:21
p52 : 가족의 삶에 대해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꼭 유별난 것이어야 하나요? 지치지 않고 사랑하면 되지요. 등불이 어떻게 빛을 내나요? 끊기지 않는 가는 기름방울 덕분이잖아요. 기름은 일상의 작은 것이 될 수도 있어요. 믿음, 조용한 친절의 말,배려,그리고 침묵하고,바라보고,말하고, 행동하는 모습...,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삶과 사람의 관계를 불꽃으로 활활 달구는 진정한 사랑의 기름방울입니다.
p59 : 공부나 성적 같은 잣대로만 어린이의 발달을 재서는 절대로 안 된다. 감정과 영성의 성장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성장은 종종 아이가 혼자 있을 때 이뤄진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상상하는 힘을 길러주고,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에 어른의 참견 없이 스스로 노는 법을 깨우친다.
p66 : 나의 아버지는 부모의 권위는 사랑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굳게 믿으셨다. "우리 부모가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영혼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들은 저절로 부모를 존경하기 마련입니다. 부모도 아이들을 존중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어린이라는 존재의 신비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질 겁니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 존중해야 참가족을 이룰 수 있습니다."
p70 :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아이의 버릇이 나빠지지 않게 키울 수 있을까? 성서의 잠언에서부터 시작해 현대 의학지까지 책이란 책 모두가 한결같이 충고하는 지혜로운 말이 있다. "아이를 훈육하라." 옳고 그름을 구별할 울타리를 쳐주고 "그래"보다는 "안돼"라는 말을 거듭 해주는 게 좋다.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시무룩해서 돌아서더라도 미안한 마음을 보이지 말자.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훈육을 제대로 받은 아이는 나중에 감사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른으로 자라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아이는 불안하고, 자기 생각만 하고, 정직하지 않은 어른으로 자랄 거다.
p80 : 모든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왔다가,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이 사실을 정말로 믿으면 죽음을 향한 우리와 아이들의 두려움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p108 : 리드리히 블룸하르트는 오늘날에도 딱 들어맞는 충고를 했다.
"아이를 입양했다고요? 그렇다면 아이가 은혜를 모른다는 사실까지 다 받아들이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입양을 끝내 그르치고 말 겁니다. 입양한 아이가 감사해 하기를 기대하는 건 억지입니다. 아이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보일 뿐, 자기를 먹이고 입히는 사람에게 결단코 고맙다고 말하지는 않으니까요. 아이는 부모가 자기를 굶주리거나 헐벗게 놔두지 않고 제일 좋은 것을 준다는 사실을 마땅한 일로 여깁니다. 자기를 돌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는 으레 그런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으니까요. 그러나 아이가 자기를 인정해주길 은근히 바라는 양부모가 숱합니다. 아이에게 아무런 빚도 의무도 없는 사람이 순전한 동정심으로 입양했다는 사실에 아이가 존경심을 보이길 바랍니다. 그러나 아이는 영 딴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감사를 강요하지는 마십시요.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십시오. 아이가 말썽을 부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릇없는 면까지 포함해 통째로 아이의 모든 걸 받이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당신의 사랑을 느끼고 사랑으로 답을 할 겁니다. 여전히 아무런 말 없이요.
입양한 아이에게 뭘 주면서 사랑만 쏙 빼놓을 때가 잦습니다. 어떤 때는 아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가운 말도 덧붙이고요. 그러면 깊은 상처를 낼 뿐만 아니라,아이의 마음에 미움을 심을 수도 있습니다...
입양한 아이라고 다른 아이보다 권리를 덜 누리는 걸 반기는 건 아닙니다. 아이도 정확한 눈이 있어서 차별을 보면 마음이 몹시 상합니다. 왜 그러냐고요? 간단합니다. 아이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다른 아이가 더 많이 가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입양할 때는 아이를 끝까지 받아들여서 어린아이 노릇을 하고, 아이다운 요구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십시오. "
p109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마태복음 18:5) 예수님의 놀라운 이 말씀은 아이를 자기 가정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든 부부에게 똑같이 하신 약속이다.
p114 : 인생이 절대 공정한 경쟁의 판이 아니라는 사실, 다시 말해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도 배우면 도움이 된다.
p123 : 아이가 신념을 위하여 고통을 당할 강오가 되어 있는가? 그러면 아이는 강인한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자란다. 사람들이 종교의 무한 자유를 즐기는 마당이라 어떤 독자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같이 1950년대 미국에 일었던 공산주의 사냥 열풍인 매카시즘을 겪은 사람은 상황이 갑자기 바뀔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역사를 보면 특정한 종교나 이념을 따랐던 사람은 거의 다 이런 반대를 참아내야만 했다.
p133 : 회개란 엄한 벌이나 설득, 머리로 하는 토론으로 얻는 게 분명 아니다. 아직 아이 안에 꺼지지 않은 양심의 불꽃을 지키고 풀무질을 해 주어야 한다. 아주 희미한 불꽃이더라도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양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계속 갈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아버지는 양심을 구약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에 빗대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사름들이 잘못된 길로 가자 예언자가 일어나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다. 마찬가지로 십대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물건을 훔치고, 마약을 하거나 술에 취하고, 그리고 성관계를 맺으면 아이 안에 있는 양심은 이렇게 말한다. "안돼, 잘못이야. 벌 맏을 일이라고." 그리고 양심은 행동을 요구한다. 하나님이 행동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양심을 행동을 요구한다. 하나님이 행동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양심은 길라잡이며 방향타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이에게 양심은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걸 꼭 가르쳐야 한다.